오래 전에 사두기만 했던 로드(The Road, 코맥 매카시/정영목)를 읽었고... 무서웠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 평정심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긴장감 - 심지어,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작가가 펼쳐 놓은 핵전쟁 이후의 잿빛세상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충격적이다. 이것 저것 따 빼고 보면 이미 다 짐작할만한 팩트들의 극적인 조합에 지나지 않음에도. 일견 왜소해 보이는 이 소설이 지닌 힘은 무엇인가.
시적인 문장이 내뱉는 냉혹한 현실의 불친절한 묘사가 묘한 극적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다분히 고답적이기까지한 문체는 스릴러의 장르적 매너리즘 내지는 끌리쉐를 교묘하게 감추며 지능적으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악마 같은 글쓰기를 봤나!
읽고 나니 자연스레 주제 사라마구의 역작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른다. 무섭기로 따지면, 몰입의 정도로 보면 로드의 완승. 그러나... 결국엔 사라마구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가, 아니 내가 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훌륭한 문장과 잘 짜여진 구성의 조합 그 이상의 무엇이기 때문일테다.
사라마구가 그려낸 두 도시(하나는 공포스럽고, 다른 하나는 다소 엉뚱한)는 로드의 잿빛 세계보다 훨씬 더 많은 현실의 굴곡을 사유하게 해준다. 언제나 그렇듯... 공연이든 파티든 영화든, 내가 원하는 건 누군가 잘 차려놓은 밥상에 손님으로 초대 받는 게 아니라 경계를 넘어 함께 사유하고 상상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파자마를 입고 소파에 벌렁 누워 게걸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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