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을 설계하고 건설한 로버트 모제스는 누군가에겐 영웅으로, 누군가에겐 약탈자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메트로폴리스의 전범을 만들어냈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메트로폴리스가 기능하게 되는 시스템까지도 마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운타운과 주거지역의 분리, 교외에 마련된 대규모 베드타운, 미국 중산층의 전형적인 주택 건설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시스템. 대규모 간선도로와 자동차 본위의 교통시스템... 모제스에 의해 맨해튼은 하나의 전범이 되고 그것의 클론들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토건족들은 그의 사례를 교본으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뉴욕에서 이루어진 가장 가슴 아픈 파괴활동 중 하나는 ... 구 펜실베니아 역(驛)의 철거였다. 1963년과 1966년 사이,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그 소유주인 펜실베니아 철도에 의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끔찍하게 생긴 29층짜리 사무용 건물, 그것도 2만석 규모의 스포츠 경기장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 떡 버티고 있는 건물이 들어섰다. (중략)
이러한 파괴는 뉴욕의 근 반세기 역사상 가장 큰 좌절감을 시민들에게 안기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시민 공공의 의사보다 돈의 힘이 정책 집행의 우선 순위가 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 Metro Marxism, Andy Merrifield
참으로 적나라한 비판이다. 허나 실제 맨해튼을 살펴 본 결과,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한편, 엄살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정말로 34번가 '펜'역 주변의 풍경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그 예전의 모습에 비해 천박하기 그지 없는 게 사실이지만 ... 그게 어디 서울만 하랴, 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얘기다.
그리니치 모퉁이 한 켠에 자리한 'Tiles for America' 911 테러 희생자들과 충격에 휩싸였던 스스로를 위로했던 시민들의 흔적들.
파괴된 공동체 그리고 빛과 어둠의 극명한 컨트라스트 속에서 뉴욕이 곳곳이 황폐화되었는데,
이를 바로 잡고 나선 것은 또 다른 영웅이 아닌 바로 시민 스스로였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바꾸고 이루었다.
오늘 살펴 볼 것은 그 시민 주도 재생 사업의 몇 가지 흔적들이다.






우선 시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5번가 중심부의 뉴욕공공도서관
말 그대로 '공공도서관'이라 출입의 제한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후지지 않았다.
과연 '공공=후지다'는 공식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공공'은 결코 후지지 않다.
우리가 여지껏 보아 온 것은 대강 구색만 갖춘, 사영과 사익의 존재를 빛내주기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 '공공'이었던 게다.
뉴욕 공공 도서관은 그 분명한 증거다.
게이 해방을 주제로 한 기획전까지(?) 열리는 걸 보면... 컬렉션의 수준과 인적 자원의 수월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방향을 돌려 뒷편으로 가보자.
빌딩 숲 사이로 가지런히 펼쳐진 잔디 밭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전혀 색다른 풍경
휴식만 취하고 식사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켠에서는 정오의 책읽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HSBC에서 후원하는 행사인듯 했다. 구석구석에는 책을 빌려주는 가판대도 설치돼 있어 한 낮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이들이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인상적었던 것은 소박하면서도 알차게 진행되는 행사와 귀를 쫑긋 세운 채 열심히 참여하는 관객들.
이런 진지함이야 말로 뉴욕을 만들어 가는 힘이 아닐까 싶었다.
잠시 어수선한 서울 거리의 명색뿐인 갖가지 문화행사들이 머리 한켠을 스치고 지나간다.
비워진 앞자리와 성의 없는 진행과 딱 그 수준에 머무르기 마련인 시민들의 태도.
시멘트로 덧칠해진 청계천과 닭장차로 둘러싸인 서울광장의 캔터리블루그라스 잔디밭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ㅎㅎ
"항상 열려 있지 않으면 광장이 아니다" (서울광장 봉쇄에 반대하는 어느 피켓의 문구)
'책 읽는 뉴욕'의 면모를 보여주는 곳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니온스퀘어 근처 스트랜드 서점.
헌 책과 새 책이 공명을 이루고, 낡은 서가와 방대한 규모의 서적 그리고 대안적 문화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디 서점의 대표주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꽤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스트랜드는 '인디'다
다음은 소호에 위치한 하우징웍스 북카페.
노숙자 지원활동을 하는 NPO가 운영하는 헌책방으로, 기부받은 책들과 자원봉사가 운영의 근간이 되고 있는 곳이다.
스트랜드나 하우징웍스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책 유통공간이라기 보다는 독특한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북카페는 낯설지 않은 존재이고, 저자와의 대화 같은 행사는 대형 서점 여기저기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걸 과연 문화적 산물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대형 유통망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인디서점.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와 봉사로 운영되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서비스와 경쟁력으로 뉴욕의 명물이 되고 있는 헌책방.
이런 대안적인 공간들이 구석에 쳐박혀 있지 않고 고객들이 많이 찾는 번화한 지역에 넓은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뉴욕의 문화적 저력은 기실 이런 곳들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대안적이면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잠재울 수 없어 일하고 있는 스탭들에게 여러 가지 캐물었지만 속시원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미국인들은 확실히 자기가 맡은 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곳으로 가보자.
여기는 브로드웨이 23번가(?) 쯤에 있는 매디슨스퀘어가든.
초저녁 무렵 작은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역시나 우리 주변에서도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다르다.
우선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뉴욕시나 기업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과시하고 전시할 근거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척 소박하다. 무대도 진행방식도.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참여하는 관객이 주인공이 된다. 보여주기식 큰 행사에서 관객이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과는 판이한 구성인 게다.
여기에 바로 뉴욕시와 시민 간 독특한 협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적인 공간은 시민의 참여 속에 자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자율성과 참여가 갖기 쉬운 느슨함과 방임주의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확실한 조직적 체계도 갖추고 있다.
시민 주도로 구성된 비영리단체(NPO)가 그 핵심이다.
비영리단체는 우리 사회에도 많이 않냐고? 너무 많아 탈이지 않냐고?
양과 질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양질전화의 법칙? 그 임계점은 우리 사회의 경우 아직도 높아만 보인다.
대표 주자 격인 Central Park Consevancy의 경우 연간 예산 2500만 달러의 80%를 자체 조달한다.
뉴욕시의 지원은 20%에 불과하다. 인력운용도 자부담과 시 지원의 비율이 이와 비슷한 구성이다.
사회운동적 성격 일색이거나 냄새나는 관변단체 일색인 우리와 달리
이들 NPO는 사회적 기업에 가까운 조직이다.
때문에 비효율로 상징되는 공기업 마인드, 그리고 그 대척점에 놓여있는 아마추어리즘 양자가 모두 극복되는 것이다.
이런 성숙한 거버넌스 구조는 물론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고질적인 도시문제와 그것이 초래했던 절망적인 상황이 무엇보다 절실한 동인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상황에 압도되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끈질기게 대안적 질서를 만들고 가꿔 온 뉴욕 시민사회의 노력과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시 정부의 열린 사고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당연한 모습은 아니다.
다음 글에서는 최근 오픈한 하이라인의 사례를 보며 우리가 참조해야 할 희망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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