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미 커피 한잔을 마셨다. 어제는 오전에 1천원짜리 카페라떼에 이어 오후에는 11천원짜리 차콜 로스티트 커피를 마셨다. 북한강변에 자리한 왈츠와 닥터만이라는 카페는 비싼 가격만큼이나 다양하고 진귀한 커피를 제공하는 집인데 사장이 커피에 매료돼 본업을 접고 이 바닥으로 나섰다고 한다. 아내는 커피같은 일상적인 물질에 그토록 빠져드는 게 자기로선 쉬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동감을 표했지만 커피의 역사를 보면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리아 코헨의 [탁자위의 세계]에 보면 커피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오는데 아내와도 공유할 겸 여기에 옮겨 보고자 한다.
리아 코헨에 따르면 커피의 기원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고 한다. 모두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솔로몬 왕에게 커피 끓이는 법을 알려주어 백성들의 병을 낫게 했다든지, 성자가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깃털 새를 쫓아갔는데 거기서 발견해 순례자들의 병을 치료했다든지... 뭐 그렇고 그런.
어쨌거나 커피의 역사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방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정설인 듯 한데, 이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상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아랍인이었다고 한다. 카와(qahwa)라고 불리던 그 신비의 열매에 커피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들이라고. 대단한 아라비아의 상인들...
"커피를 비밀 속에 감춰두기로 마음먹은 것 역시 아랍인들이었다. 그들은 끓이거나 햇볕에 말려서 땅에 심을 수 없게 된 커피콩을 거래하긴 했으나 재배 가능한 식물형태로 무슬림 세계의 경계 밖으로 가져나가는 것은 불법으로 해 놓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커피를 음식의 일종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커피는 영적인 조력자였다. 수피교도들은 밤샘기도 중에 커피를 마시면 대마를 피우듯이 황홀경에 도달하여 신에게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커피에는 또한 약의 효능도 있었다. ...피부를 투명하게 해주고... 기침을 억제... 천연두와 홍역 예방... 최음제로서의 효능..."
얼마 전 보도된 커피에 면역효능이 있다는 연구결과는 전혀 헛말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대마처럼 황홀하다는 부분은 좀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 시절엔 사람의 몸이 덜 오염돼서 그런 반응이 나온 건지 아니면 추출방식 등이 달랐던 건지는 모를 일이다.
암튼 커피는 예전에도 사회성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이었는 지 커피를 받아들인 아랍문명에서도 커피하우스라는 게 생겨났다고 한다. 모여서 커피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고 논쟁도 벌이고. 카베(khave)라고 불린 그 시절의 커피하우스는 결국 박해를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마침내 카베의 이런 성향이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중략) 커피는 이(알콜)보다 더 위험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의지와 충동을 날카롭게 했다. 카베가 사원들보다 더 인기를 끌게 되자 권력자들은 모종의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의 샤 아바스는 정치적인 대화를 억제시키기 위해 율법학자들을 커피하우스에 상주시키고 시, 역사, 종교를 토론하게 했다. ...(중략) 커피하우스는 1511년에 메카에서 금지되었으며, 카이로에서는 1534년에 파괴되었고, 콘스탄티노플에서는 1554년 칙령에 의해 금지되었다."
아랍문명권내에서 전유되던 커피가 서구 및 다른 세계에 전해지게 되는 과정 또한 문익점의 목화씨 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아니 더 흥미진진하다. 커피는 일단 오랜 시간에 걸쳐 전쟁 등의 교류를 통해 서구세계에 전해졌고 이후 유츌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식민지에 전파되기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커피가 재배된 것은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서고, 커피왕국 브라질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브라질 대령과 프랑스 제독부인의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인이 대령에게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했고 그 속에 커피묘목이 감춰져 있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전해 오는 것이다.
커피 맛을 본 서양사회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커피의 진정한 대중화의 물결은 17세기 중반 커피하우스의 확산과 함께 시작되었다. 커피하우스는 빈, 런던, 베니스, 마르세유, 암스테르담, 파리, 함부르크로 퍼져나갔으며 아랍국가들에서 일으켰던 것과 똑같은 기이한 마술을 선보였다. 커피는 사람들을 세속적인 장소로 한데 모으고 자유로움을 퍼뜨렸으며 대화의 장을 열었다."
그러고보면 고대와 중세에 악마의 열매로 터부시 되기도 하며 약재로 쓰였던 커피가 근대에 이르러서는 사회변화의 촉매 역할을 하는 신비의 묘약이 된 것 아닌가.커피하우스라는 근대적 공간의 탄생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영국에서 커피하우스는 '푼돈대학'이라는 별칭을 얻었는데 1센트의 여유만 허락된다면 누구든지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앉아서 학자, 상인, 여행가, 단체의 지도자, 만필가, 시인들의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커피가 유통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구속받지 않는 사상과 자유로운 토론이 넘쳐나는 듯 하였고..."
인터넷(웹)도 한 때 21세기의 커피하우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헌데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몇 년간 반짝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이내 슬럼이 되고 말았다. 군데군데 아주 작은 가능성의 공간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자본으로 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쓰다보니 길어져다. 커피나 한 잔 더 마시고 계속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