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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cial Entrepreneur in Wonderland * Twitter : @louiskim

나는 형광등이 싫다. 그 창백한 빛깔도 기분 나쁘고, 껌뻑거리며 켜지는 모양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폭 수준의 아이들이 형광등을 무기삼아 사람을 잡는다는 얘기를 듣고나서는 그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라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형광등이 싫은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이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긴데...
언제나 형광등은 천장에 달려있으며 그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포괄한다. 이게 싫고 짜증나는 거다.
왜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모든 공간이 밝아져야 하는가.
왜 공간의 다른 영역의 자율성은 보장되지 않는 것인가.
혹시... 어릴 때부터 이런 형광등 아래서 먹고 자고 생각해 온 한국인들이 그래서 이렇게 전체주의적인 습성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모든 걸 모두가 다 알아야 하고 직성이 풀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형광등이 달린 방처럼 모든 사유의 공간이 동질화 돼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앞으로 혹시 이사를 가게 되거나 집을 꾸미게 되면, 모든 형광등을 없애버릴 생각이다. 형광등이 달려 있던 그 자리, 공간의 모든 곳을 하나의 빛이 점령할 수 있는 그 오만한 자리는 영영 비워둘 참이다. 대신에 여기저기에 작은 범위를 포괄하는 전등 여러 개를 나누어 설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자율적이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자기의 관심사가 무언지도 평생 모르는 주제에 세상의 관심사 따위에 목 매다는 어처구니 없는 짓은 안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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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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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hddnjs
    2006/01/03 21:30
    음...이건 좀 너무 억지인거 같다...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모든 공간이 밝어지는 것은 비단 형광등 뿐은 아닌거 같고... 형광등이 한국인의 전체주의적인 습성을 갖게 했다는것도 독설일뿐더러, 일부만 비추는 조명을 단다고 해서 자율적이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을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자율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보다... 작은범위를 포괄하는 전등 여려개를 달고, 이를 동시에 모두 켜둔다면 본래 목적과 달리 현광등을 달았을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전체주의적(?)일 것이며... 반대로 전등 중 일부만 켜놓는다면 오히려 아이들이 시력을 쉽게 버려 반(半)장님으로 살거나,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놀림받으며 살지는 않을까...
  2. evo
    2006/01/04 00:48
    ㅎㅎㅎ 이런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감수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다름' 같구나...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너보다 민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다오.
  3. 2006/01/04 06:44
    ㅎㅎㅎ... 일단 분할된 조명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집이 검나게 넓어야 할 것이여...ㅋㅋㅋ
  4. 은유맘
    2006/01/04 11:10
    여보..외국영화같은데 보면 곳곳에 예쁜 스탠드들로 조명을 하긴 하던데.. 너무 전기세가 많이 나올거 같아. ^^ 키큰 스탠드 여러개씩 사려면 또 돈이 얼마나 들겠어..
  5. evo
    2006/01/04 20:38
    [R] 지금 우리집 정도로도 충분할 듯...

    [은유맘] 요즘 절전형 램프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전기세 부담은 크지 않을 거야. 초기 설치 비용은 많이 들테지만
  6. 2006/03/27 14:47
    하하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어쩌다 놀러오게 된 사람입니다. 전 형광등을 좋아해 본 적은 없지만, 중국에 와서 형광등 없이 생활하다 보니, 전체를 환하게 밝혀주는 형광등이 무지 그리워지는군요. 안방이며 거실, 식당 등 넓은 공간은 모조리 백열등으로 채워져 있는 이 곳, 적응하기 힘드네요. 부분조명이 더 있다면 좋을까요?^^부엌과 세면실만 '정상적인' 형광등이랍니다. 백열등 아래 책을 보면 무지 피곤해져요.ㅠㅠ

철도는 한편으로 이제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들을 열어놓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일을, 그 사이 공간을 없앰으로써 가능하게 했다. 느리고 노동집약적인 원시기술적인 수송에서는 완전히 감내해야 했던 사이 공간 혹은 여행 공간이 기차 수송에서는 사라졌다. 기차는 단지 출발과 목적만을 안다.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 여행의 역사], 궁리


철도 여행의 역사는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다. 홍대 앞 동남문고에서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펼쳐든 책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당시 지하철 문화와 관련한 특집기사를 준비하던 나는 책의 한 구절을 매우 긴요하게 인용했었다. 물론 어느 부분이었고, 어떤 내용이었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요즘 들어 다시 이 책의 내용이 떠오른 것은, 잊고 지냈던 혹은 모르고 지냈던 내 주변의 '사이 공간'들을 요즘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동네 구석구석을 접하게 될 일이 많아졌고 그래서 예전엔 그냥 출퇴근을 위해 지나칠 뿐이었던 그 공간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됐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이 곳이 집 근처 강동도서관이다. 우리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자리한 이 도서관에는 꽤나 많은 책들이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역, 어머니댁과 우리집 사이에 있어 지나칠 일이 많았건만 예전의 나는 미처 들러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우리 같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꽤 많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굳이 사람이 북적이는 도심으로 진출하지 않더라도 만족스러울 정도의 문화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대다수는 많은 가능성을 지닌 대부분의 공간들을 사이 공간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기를 쓰고 매일매일 피곤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지역공동체의 물적토대는 어느 정도 마련돼 있는데 정작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형국이랄까.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집 주위에서 해결할 수가 없으니. 그게 핵심이다. 시장은 집중을 원한다. 우리는 일단 모여야 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하고 짜증나며 낭비적인 이동의 행렬에 매일매일 동참해야 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강제이지만 어느새 자발적인 것이 돼 버렸다. 그래서 놀 때도 기를 쓰고 중심으로 모여든다.

일상의 반경을 보다 작게 만드는 것은 그래서 의미를 지닌다. 엉성하고 큰 동선보다는 촘촘하고 작은 족적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언제나 해답은 가까이 있는 법이다. 굳이 어렵게 수도를 쪼개 여기저기로 분산하면 뭐하나? 그러면서 한편으론 신도시 남발로 수도권을 더욱 과밀하게 만들고 있는데.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듯 이런 저런 기관들을 여기 저기로 보내면 뭘하나? 어차피 또 그 내부에서 중심과 주변이 나뉠 것이고 중심으로의 응축도가 높아질수록 수많은 사이 공간이 생겨날텐데.

두서 없는 글이 돼 버렸다. 술 탓이리라^^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출발과 목적만을 아는' 인생은 불행하리라는 사실.
Posted by 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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