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망원렌즈를 달고 샷을 날려봤다. 오랜만이어선지 감흥이 새로웠다.
한 때는 광각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가 또 한 때는 50mm 표준(단)렌즈... 그러다가 망원, 한 바퀴 돌아 다시 광각... 뭐 이런식으로 구도와 화각에 대한 기호는 돌고 도는가 보다. 골프에서도 드라이버가 잘 맞았다가 어느 날은 아이언이 잘 맞고 또 어떨 땐 퍼팅이 잘 돼 그린에서만 펄펄나는 것 마냥...
APO는 생각보다 훌륭한 렌즈였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직접 찍어 보니 가히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백통(캐논의 대표적 망원 줌 렌즈) 가격의 7분의 1에 불과한 가격이나 두 렌즈 모두 찍어 본 나로선 그만큼의 가격차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빛이 충분한데 렌즈가 좀 어두우면 어떻고, 손떨림쯤이야 보정이 안되면 또 어떤가. 모두가 스포츠 사진 기자 노릇 할 것도 아닌데 신속하고 조용한 오토 포커싱은 그야 말로 바로크적 오바 아닌가.
사실 APO의 매크로 기능을 시험해보고자 위와 같은 접사 비스무리한 샷을 날렸으나 뭐니뭐니해도 망원렌즈의 매력은 일반적인 배율에서는 도드라지지 않는 피사체 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데 있다. 객관적인 화각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미묘한 관계망을 망원은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예컨대 부대 안으로 멀어져 가는 애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은 광각이나 표준렌즈가 아닌 망원의 화각 속에서 더 정당하게 묘사될 수 있다.
그러고보니 삶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 역시 그때 그때 줌인과 아웃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복잡하기 짝이 없고 감정은 미묘하기 이를 데 없으며 관계는 그야말로 실타래 처럼 얽혀 있는데 단렌즈처럼 바라보며 산다는 건 너무 무모하지 않나 말이다. 많은 이들이 하나의 화각으로만 세상을 대하려 하기에 세상살이가 좀 더 복잡해지고 피곤해지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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