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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cial Entrepreneur in Wonderland * Twitter : @louiskim

"감옥에 있을 때 후배들이 찾아 와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미 선생의 이름을 잊었거나 이름도 모르더라고 했을 적에도 나는 별로 초조하다거나 섭섭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세상에 나온 뒤에도 혹자는 황아무개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를 염려하더란 소문도 들렸고 사실 어느 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내게 묻기도 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보다 훨씬 담담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마치 쥐고 있는 패가 신통치 않은데도 새벽까지는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느긋해하는 노름꾼처럼 말이다. 하여튼 뭔가 빛나는 물건을 만들어보려고 애달캐달하던 조급증이 가셨다. 전처럼 감정을 아낀 문장을 갈고 다듬기보다는 그냥 수수하게 마음을 열자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야 평상심으로 글을 대하게 된 것 같다."
- 작가 후기 중에서

황석영 선생이 근 15년만에 썼다는 소설 <오래된 정원>(창비)을 출간 된 지 근 6년이 지나 읽었다. 그의 작품은 단편만 접해봤고 장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읽고나니 <무기의 그늘>도 읽고싶어 졌다.

<오래된 정원>은 제대로 씌어진 후일담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한 시대를 짓눌렀던 무거운 공기와 비일상적인 감정의 언저리만 살짝 건드리곤 했던 예의 후일담류와는 종류를 달리한다. 그래서일까 대학시절 읽었던 방현석의 <십년간>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1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두환 정권 초반 검거돼 18년을 복역한 장기수 오현우와 그의 연인 한윤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시대를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 또는 회상의 수고로움이 요구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을 간결하면서 동시에 친절하게 써내려간다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읽으면서 여러 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현실의 외피를 벗겨내고 그것이 발 딛고 선 토대를 직시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리라. 그래도 많은 동생들, 후배들,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땅에서 뿌리 내린 만큼, 낑낑거리며 600페이지를 넘기는 수고 쯤, 기꺼이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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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aton
    2006/07/21 20:28
    2000년 봄에, 당시 인터넷서점 815에 근무하던 배 선배의 부탁으로, 자치도서관 이름을 걸고 황석영 선생 강연회를 열었더랬습니다. '오래된 정원' 출간 기념 강연회였던 탓에 일찌감치 책을 사서 읽고 준비해서 진행했었는데 강연 내용이나 이후 뒷풀이에서 황 선생님께 들었던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오현우는 결국 황 선생 자신의 회고담이 주된 줄거리였던 것 같더군요. 그냥 문학적인 차원에서만 읽어본다면, 사실 그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더이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70년대 초반 발표된 단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해 아는 반면, '아우를 위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사실상 '아우를 위하여'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문열이 황석영을 베끼다시피했지만 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진보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우를 위하여'에서 엄석대에 해당하는 인물은 급장 영래는 한병태에 해당하는 '나', 김수남이 촉발한 대중저항에 의해 축출된다. 여기서 선생님이 한 역할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보조적인 것에 그친다. 새로 부임한 교사가 쥐잡듯이 애들을 조져 엄석대 왕정을 끝장낸 것과 대별되는 부분이다.

황석영의 김수남은 학급질서의 변동이라는 외적인 변화와 함께 내적으로도 변화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일종의 삶의 지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문열의 한병태가 아무런 내적 변화가 깨달음 없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성장하고 꾀쬐죄한 일상에서 영웅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같은 차이들이 오늘날 인간 황석영과 이문열 사이의 큰 차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이상의 시차를 거친 만큼, 또한 단편과 중편이라는 분량 차이도 있는 만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좀 더 세련되고 밀도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간결한 내용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풋풋한 신념이 느껴지는 젊은 황석영에게 더 끌렸다.
70년대 초반 군에 입대한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이 소설에서 황석영은 병영사회를 뚫고 나가기 위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할 할 지 동시대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렵엔 꼭 집어내서 지각할 수는 없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이는 진보(進步)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 주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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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haqkek
    2007/04/04 22:32
    공감하기도 하면서.
    이문열의 글을 읽으면 그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밀어부치는 듯한 태도에 반감을 갖기도 하지만, '우리둘~'의 뛰어난 솜씨에 감탄하는 저로서는 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그렇군요. 두 작가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이며 그것은 우열의 문제도, 뚜렷한 선택의 문제도 아닌 것 같군요. 또한 작품은 작가의 도덕성과는 별개일 것입니다.(물론 그 도덕성이라는 것도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만) '우리들~'속의 반 아이들이 우리 모습에 가깝지 않는지. 나는 물론 우리 모두 그런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씁씁한 자각.
    한편으로, 문학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끝없는 물음, 문제 제기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겠지요.
    • evo
      2007/04/09 13: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 글을 좀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는 두 작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름'을 지적했을 뿐이구요... 그 차이가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제가 느낀대로 설명했을 뿐입니다.

      그런 후에 이문열의 문제해결 방식 내지는 세계관 보다는 황석영의 그것에 제 개인적으로 더 동의한다는 의견을 덧붙였을 뿐이지요...

      베끼기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여담으로서 주제와는 별개이구요^^

      '우리들~' 속의 상황이 현실과 보다 유사하다는 님의 판단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만, 문학작품이 현실과의 유사성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보다 복합적인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과의 유사성이 잣대라면 신문을 일독할 일이지 문학작품을 들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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